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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바라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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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캐나다에서 바라본 세상"에 대한 검색결과403건
  • [비공개] 홍걸이가 이제서야 진면목을 보이는구나

    홍걸이가 진면목을 보이는구나.홍걸이는 내 대학 동기다. 1982년 고대 불문과에 입학해서 1학기 남짓 함께 다녔다. 말도, 표정도 없었고 숫기도 물론 없었다. 늘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다. 물론 사형될 뻔한 아버지가 여전히 감옥에 있고 본인도 일거수일투족 감시를 받고 있으니 활기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과 친구들은 일부러 "저 놈이 이대부고를 나와서 저런 거야"라고들 이야기했다. 이대부고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녀 합반인 작은 학교였다.81학번이 문무대 가서 데모를 하는 '대형 사고'(109명이 바로 군대에 끌려갔다)를 치는 바람에, 우리는 대학문화에 '물들기' 전인 3월에 문무대에 갔다. 걱정과는 달리 무사히 잘들 다녀왔다. 혹시 '관심 사병'이 되지 않을까 말없이 염려들도 했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 홍걸이는 발이 커서 신..
    캐나다에서 바라본 세상|2016-01-29 12:51 p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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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공개] 스승福 시리즈 : 김준엽 총장에 대한 아주 사적인 추억

    고 김준엽 고려대 총장(1920~2011) 지금껏 살아오면서 목이 쉬어 말을 하지 못한 적이 딱 두 번 있었다. 사나흘 동안 아예 소리를 낼 수 없었는데, 대학시절 정기고연전 때문에 그랬다. 한 번은 1학년 때인 1982년 정기고연전 직후. 또 한 번은 1983년 고연전 취소에 대한 항의 데모를 한 다음이었다. 1학년 때는 응원 때문에 목이 잠겼지만, 2학년 때는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한 철야농성으로 인한 것이었다. 하룻밤 농성이었으나 목은 훨씬 더 아팠다. 밤샘 농성의 흥분과 공포가 말도 못하게 커서 소리소리 질렀기 때문이다. 1983년 9월초였다. 제5공화국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 대학 내에서는 시위는 고사하고 몇 명이 그냥 몰려 다니기만 해도 학내에 상주한 사복 경찰의 눈길이 따라붙던 때였다. 그 눈길을 용케 피해 반정부 시위를 벌인다 해..
    캐나다에서 바라본 세상|2015-11-09 06:52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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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공개] 스승福 시리즈 : 전신재 선생님 4

    내가 가진 잡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양정고 교지 두 권이다. 고교 시절 교지를 모두 세 권 받았으나 1~2학년 때 편집에 참여한 이 두 권은지금까지 품고 살아왔다. 캐나다 이민 가방에도 물론 넣어왔다. 선생님께서 주도하신 문예반 공동 연구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교지 편집을 하면서 얻은 배움도 거기에 못지 않았다. 대학과 대학원, 그리고 기자가 되어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그때 익힌 기본기 덕을 많이 보았다. 이 글을 쓰려고 교지 두 권을 다시 펼쳐보았다. 35년이나 지난 지금 보아도 내용이 알차다. 기획과 구성, 편집 모두 전신재 선생님이 하셨으니 선생님의반듯한 성품을 보는 듯하다.겉으로는 수수하되속은 여물고,화려하지않으며 겉치레나꾸밈이 없고 정확하다. 학생들에게 읽히는 유익한 잡지로 만들려고 애를 쓰..
    캐나다에서 바라본 세상|2015-07-14 05:07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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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공개] 스승福 시리즈 : 전신재 선생님3

    전신재 선생님은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는 문예반의 전통적인 행사에 대해서는 이렇게 지원만 하고 간섭은 일체 하지 않으셨다. 높고 든든한 울타리로서 보호만 해주셨을 뿐. 당시 고교에서는 통제가 일상화되어 있었는데, 전 선생님은 통제는 고사하고 우리의 자율적 활동에 대해서는 지시조차 하지 않으셨다. 그저 "최선을 다 해 열심히 하거라"라는 말씀이 전부였다. 문예반 담당 교사로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한 것은 따로 있었다.문예반을 처음 맡아, 역시 문예반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신입생인 우리 학년에게 1년 공동 연구 과제를 내주고 그 활동을이끌어주셨다.선생님께서 1979~1980년 양정고에서 문예반을 맡으신 2년, 우리가 문예반 활동을 했던 2년 동안 줄곧 했던 일이다. 1980년 1월12일자로 발행된 교지 제42호의 편집후기에는 윤태..
    캐나다에서 바라본 세상|2015-07-12 03:49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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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공개] 전신재 선생님(2)

    문예반에서 난리가 난 것은 문학의 밤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서였다. 합법적으로 수업을 빼먹고 마지막 낭송 연습을 하고 있는데 문예반장 윤태일이 교무실에 불려갔다가 울상이 되어 돌아왔다. 인쇄한 작품집을 찾아오는 길에 어느 선생님한테 그것을 보이게 되었는데,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는 것이다. 뒤집힐 만도 했다. 우리가 2학년이 되어 문학 발표회를 주관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한 마디로 기고만장 했었다. 아무나 찾아오는 문학의 밤은 하지 않겠다, 우리가 보낸 초청장을 들고 오는 진지한청중 앞에서 조용하게 진행하겠다며강당이 아닌 학교 회의실에서 행사를 열었다.내용도 창작품 낭송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가 문예반원으로서 1년 동안 공부해온 바를 청중들 앞에서 토론 형식으로 발표하는 프로그램도 끼워넣었다(그 내용에 대해..
    캐나다에서 바라본 세상|2015-07-09 12:37 p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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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공개] 스승복 시리즈 : 전신재 선생님(1)

    2015년4월18일 고교 은사 전신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가슴이 덜컥 하고 내려앉았다. 나에게는 부모와 다름없는 스승이셨다. 1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마음속에 품고 살아온 선생님이니, 그 상실감이 상상 외로 컸다. 지난 세월 전신재 선생님은 양정고65회 동기인 우리 문예반 친구들과 함께하셨다. 졸업 후에도, 직장인이 되어서도, 결혼을 하고도 우리는 거의 정기적으로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나는 캐나다에 살러와서도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선생님이 계신 춘천으로 수시로 내려갔다.1982년 고교 졸업 후 지금까지 늘 그렇게 살아왔다. 1979년 양정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외로웠다.우리 중학교에서 딱 한 명 배정된 데다, 서울 변두리에서 중앙으로 처음 진출한 나로서는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
    캐나다에서 바라본 세상|2015-07-08 12:36 p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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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안병찬2

    안주간은 오자마자 본색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편집부의 내 자리는 편집주간석 바로 앞에 있어서 그분을 비교적 잘 볼 수 있었다.처음에는 탐색을 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랬다는 얘기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첫인상으로 보아서는 그리유순한 분은 아니다. 눈매가 날카로운 데다 부드러은 느낌은아니었다. 그래도 별 말 없이왔다갔다 하시니 대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저녁을 먹고 기자 몇 명이 앉아 잠시 쉬는 자리에서 안주간이 대뜸 물었다."성우제씨는 지금 뭐 하고 있나?""기사 받아놓고, 미술부에서 레이아웃 넘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레이아웃이 아직 안 나와서 일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레이아웃에 원고를 넣어서 넘치면 자르고 모자라면 취재 기자에게 더 넣어달라고 요청하고, 미술부에서..
    캐나다에서 바라본 세상|2015-03-29 12:45 p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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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공개] 안병찬1

    안깡.살면서 사람에게 붙은 별명을수백, 수천 가지 접해 왔으나이보다 멋진 별명을 아직본 적이 없다.별명이 성격이나 생김새, 이름뿐 아니라 첫 인상, 주변 사람들에게 주는 느낌, 개성 등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집약해 드러내는것이라면'안깡'은그 순도로 보아단연 톱클라스급이다. 그분을 떠올릴 때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미지는 없다.이 별명을 떠올리면 그분이 확 살아서온다. '안깡' 하면, 그 별명을 애칭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겠고 여전히 원한에 사무쳐 이빨을 빠득 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이것은 순전히 추측이지만 신빙성은상당히 높다). 이 별명은그 분의 첫 직장인 한국일보에서 시작되어, 내가 그 분을 만났던 시사저널에서유지되었으며 경원대 교수 등을 거쳐 언론인권센터 이사장으로 일하시는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을 ..
    캐나다에서 바라본 세상|2015-03-29 01:46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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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공개] 김화영 선생님 7(마지막)

    해마다 연말이면 서울에서 토론토로 큰 연하장이 날아왔다. 김화영 선생님이 보내시는 고대 달력이었다. 2003년 이민 온 첫 해에 "12장짜리 연하장을 보낸다"고 달력에 직접 글을 써서 보내셨다.정년퇴임을 하실 때까지 연하장은 계속 날아왔다.선생님께서 서울에 안 계실 때는 조교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보내셨다. "가족 모두 건강하게 잘 있습니다"라는 엽서라도 보내드리면 선생님은 화선지에 붓글씨로 쓴 장문의 편지를 보내주셨다. 이메일 안부 편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내가 하는 것보다 더 크게 베풀어주셨다."제 나라 안에서도 삶은 날이 갈수록 서먹하고 고단한데 낯설고 말 설은 나라에서 얼마나 힘든 일이 많을까?" 이런 염려와 더불어 "가족 함께 늘 건강하고, 그리고 힘내라. 우리 모두 힘내자"고 격려하는 내용. 서울에서뿐 아니..
    캐나다에서 바라본 세상|2015-03-26 05:17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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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공개] 김화영 선생님 6

    김화영 선생님 6 문화부 기자로 일하면서 김 선생님을 1년에 두 번 이상은 뵈었다. 젊은 작가들과 함께하면서 연락을 주시기도 하고, 대학원 학생들과 종강 모임을 할 때도 불러주셨다. 내가 문화부 팀장이 되었을 때는 우리 부서후배들과 함께김화영 선생님을 찾아뵙기도 했다. 후배가그랬다. "선배, 대단하네. 어째 지도교수를 지금도 만난대?" S대 독문과에서 나처럼 석사까지 하고 나온 후배였다. 나는 선생님을 뵙는 일을 당연하다 여겼는데 남들 눈에는 특별한 일로 보였던 모양이다. 하긴 주변을 둘러봐도 그런 일은 별로 없었다. "S대와 K대의 차이점이지, 뭐." 나는 농담으로 그렇게 말하긴 했으나, 고대에서도 별로 없는 일 같았다. 선생님을 이렇게 만나면서 나는 기자로서 배우는 것이 많았다. 고급 정보를 듣는 것은 기본이이고 문화예술 관련 글..
    캐나다에서 바라본 세상|2015-03-25 11:22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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