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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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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에 대한 검색결과1294건
  • [비공개] 한국사 15.고려의 무신정권과 외세에 대항한 이야기(ver 0.1)

    앞선 글을 통해서 고려가 어떻게 나라의 기틀을 잡았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고려 사회의 모습과 고려란 나라의 구조를 두 편으로 살펴봤습니다. 그 이야기에서 자세히 살펴보았던 것은 신라를 망하게 한 지방의 세력가들인 호족을 어떻게 고려가 고려란 나라의 왕의 말을 잘 듣도록 하느냐였습니다. 그래서 고려는 중앙집권화를 하지요. 중앙집권화는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것을 말하죠. 그래서 호족들이 버티고 있는 각 지방에 관리를 파견하는 것은 중앙집권화를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일이지요. 이렇게 하기위해 처음에 왕건은 호족들의 딸들과 결혼을 하는 혼인 정책을 펼치지요. 그리고 이후 후대 왕들이 당나라의 조직체계를 받아들이면서 호족을 중앙 관료로 만드는 작업을 합니다. 물론 중간에 피비린내 나는 숙청도 있었구요. 그런데 이러는 과..
    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2014-08-21 01:27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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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합의된 세월호 특별법,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서...2014년 8월 19일. 여당과 야당 대표가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특별검사에 대한 부분을 합의했다. 그동안 여당은 헌법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특별법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야당은 헌법적 질서를 무너뜨리더라도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내야 되기 때문에 수사권이 포함된 조사단이 필요하다는 유족의 말을 대변하고 있었다. 여당과 야당 대표는 이부분에 대한 접점으로 특별검사제도를 이야기 했었고, 여당과 야당 대표가 이날 합의 한 것은 법에 따라서 법무부 차관, 법원행정처 처장, 변호사협회 회장, 그리고 국회에서 추천한 여당 2명, 야당 2명 등의 7명으로 구성되는 추천위원회가 2명의 특별검사 후보를 추천하게 되면, 대통령이 마지막에 1명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유가족들을 ..
    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2014-08-20 11:02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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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한국사 14.고려의 사회모습(ver 0.1)

    우선 나라의 뼈대가 되는 중앙 정치제도 먼저 살펴보도록하죠. 고려는 당나라가 쓰던 3성 6부제를 들여와 사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려에 맞춰서 2성 6부로 만들어버리지요. 당나라의 3성은 중서성과 문하성, 상서성으로 구성되는데요. 고려에서는 이중에 중서성과 문하성을 합쳐버립니다. 형식적으로 합쳐진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은 독립된 기구지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상서성이 중서문하성 밑에 예속된 형태를 띄게 됩니다. 상서성 아래에 6부가 있는데요. 이(吏),병(兵),호(戶),형(刑),예(禮),공(工)의 순서로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이6부가 쓰이지요. 이부들은 지금으로치면 장관들이 있는 행정기관이라고 보면 됩니다. 중서문하성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졌던 곳은 중추원이라는 곳입니다. 주된 일은 군사기밀을 관리하..
    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2014-08-17 05:37 p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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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한국사 13.고려가 세워지고 다져지는 이야기(ver 0.1)

    고려시대는 보통 크게 세 덩어리로 구분이 됩니다. 처음 한덩이는 후삼국을 정리하고 왕건이 고려를 세운 시기부터 왕권이 강해지고 그 왕권에 기대어 성장한 문벌귀족들의 시대지요. 이번에 다룰 부분이 바로 이 덩어리의 시대구요. 다음은 이런 문벌귀족들 때문에 홀대받던 무신들이 난을 일으켜 고려란 나라를 뒤집어버리고 왕을 허수아비로 만든 무신정권의 시대입니다. 종종 인터넷에서 찬양되는 칼잡이들의 무용담이 많은 시대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덩어리 시대는 세계에 엄청난 제국을 건설한 징기스칸의 후손이 중국 대륙에 세운 원나라의 침공과 간섭기 입니다.앞선 시대와 달리 고려시대부터는 실재하는 자료들이 좀 있기 때문에 이야기의 양이 많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ㅜㅜ 뭘 넣고 빼야할지 정신없어지는 시기기도 하지요. ..
    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2014-08-15 09:57 p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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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한국사 12.기울어져가는 신라와 후삼국(ver 0.1)

    신라를 시기별로 나누는 방법이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둘다 무열왕(김춘추)를 중심으로 나누는데요. 하나는 무열왕이 되기 전의 신라와 무열왕과 그 직계자손들이 왕으로 있었던 신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열왕 계열이 아닌 왕들과 무너질 때까지 나누지요. 삼국사기에서 이렇게 나누었는데요. 무열왕 전 시대를 상대, 무열왕의 직계자손들이 왕을 하던 시대를 중대, 무열왕이 아닌 자손들이 왕을 하던 시대를 하대라고 합니다. 한편, 삼국유사에서는 좀 다르게 분류합니다. 신라가 시작하던 시기에서 지증왕까지를 상고라하고 지증왕이후 법흥왕부터 진덕여왕까지 그러니까 무열왕 전까 시대를 중고라고 하며, 마지막으로 무열왕부터 신라 멸망까지 하고라고 합니다. 뭔가 정신없어 보이는데요.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것은 무열왕이 시대를 구분하..
    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2014-08-12 05:05 p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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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한국사 11.통일신라와 발해(ver 0.1)

    6세기에 엄청난 성장을 하고 7세기에 신라는 당이라는 거대한 중국대륙의 국가의 힘을 빌어 한반도에 있던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킵니다. 신라는 당과 함께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면, 한반도 전역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은 그럴 생각이 없었지요. 애초에 어떤 약속을 했든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은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한반도에 대한 완전한 통치를 원했으니까요. 이에 대한 근거는 백제를 멸망시키고 당나라는 백제 땅에 다섯개의 도독부를 설치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후 웅진도독부 하나만 남기지만 도독부의 설치는 백제 땅을 당의 영토라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면서 당나라는 1만명의 군사를 사비성에 배치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신라는 당나라의 손을 계속 잡았습..
    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2014-08-12 12:20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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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한국사 10.고구려와 백제의 항쟁과 멸망(ver 0.1)

    지금부터 슬픈(?) 결말로 달려가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왜냐면 고구려와 백제 멸망에 대한 이야기기 때문이죠. 굳이 슬플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해당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슬프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ㅡㅡ;;고구려와 중국대륙 국가들과의 싸움 이야기를 먼저 하도록 하죠. 5세기에 커다란 제국을 만들었던 고구려는 6세기에 들어서면서 많이 위축됩니다. 앞선 글을 통해서 이야기했던 신라의 확장 때문이었는데요. 그 강력했던 고구려가 왜 신라에게 이렇게까지 밀려서 올라갔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고구려의 영향권 아래 있던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를 열심히 치고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그 바람에 고구려는 한강을 중심으로한 지역을 빼았기고 동쪽으로는 함경도까지 밀려 올라가게 됩니다. 이것이 551년 쯤의 상..
    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2014-08-07 01:42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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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한국사 9.늦게 발전했지만 마지막까지 남았던 신라(ver 0.1)

    기원 전부터 기원 후 3~4세기에 활약하던 백제나 고구려와는 다르게 신라는 많이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지리적인 영향인지 혹은 고구려와 백제의 영향력이 그만큼 강했던 것인지 정확하게 진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발전이 늦어진만큼 신라는 6세기에 들어서면서 매우 강해집니다. 신라가 실질적으로 엄청난 발전 한 것은 6세기의 지증왕 때입니다. 지증왕은 500년에 즉위해 514년까지 신라를 다스렸죠. 신라가 발전 바탕에는 농업 발달이 하나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지증왕은 502년에 소를 이용하면서 농사를 하는 우경을 권장합니다. 이에 신라 각지에서 소를 이용한 농사가 시작됩니다. 또한 이때가 되서야 신라에서도 벼가 일반적인 작물이 되었습니다. 나라 경제의 근본이 되는 식량 생산의 증대는 결국 강력한 국가의 탄생으로 이어지지요. 물론 모..
    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2014-08-04 05:12 p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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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한국사 8.반전을 준비했던 백제의 안타까운 이야기(ver 0.1)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보다더 빠르게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빠르게 전성기를 맞이했던 만큼 이후에는 큰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는데요. 그럼에도 백제는 나름대로 체제정비와 외교 등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찾아오려고 노력했습니다. 백제의 전성기는 기원 후 3세기 중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초고왕때 백제는 앞선 글로 설명했던 무시무시한 고구려 땅으로 쳐들어가면서 영토확장을 했었죠. 하지만 그 영광도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고구려가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단단하게 만들고 본격적으로 영토확장에 열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백제와 신라는 동맹을 맺게 됩니다. 참고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와 신라는 433년에 동맹을 맺는다고 합니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서로 진귀한 물품을 주고 받고 고구려의 침입에 군..
    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2014-08-03 01:02 p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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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한국사 7.고구려의 전성기와 사회구조(ver 0.1)

    이번에는 고구려의 전성기와 사회구조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고구려는 기원 후 1세기 후반 쯤인 태조왕대에 고대국가의 기틀을 잡고 기원 후 4세기 후반인 소수림왕대에는 국내 기반을 튼튼하게 다졌습니다. 이 노력을 바탕으로 광개토왕과 장수왕이 광활한 영토를 점령하러 다닐 수 있게 되었죠. 광개토왕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는 광개토왕릉비를 보면 알 수 있는데요. 광개토왕은 서쪽으로 후연을 격파해 요동으로 진출을 할 수 있었고 동북쪽으로는 숙신을 복속시켜서 만주땅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만주와 연해주쯤 되는 지역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쪽으로는 백제의 근초고왕때 입은 피해에 대한 보복이라도 하는 듯이 한반도 서쪽으로는 임진강까지 진출했고, 중부지역의 경우는 한강 상류까지 나아갔다고 합니다. 거기다 ..
    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2014-08-02 04:14 p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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